<흡혈귀 P의 일기>
-5월 3일-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름 이 상황에 정착하고 있다. 강인한 힘과 늙지 않는 걸 넘어 회춘한 몸은 버리기에는 꽤나 아까운 것들이다. 물론 가끔씩 통제할 수 없는 허기에 시달리긴 했지만, 마법은 많은 걸 해결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인간일 적의 자산(아니면 유산이라고 말해야 할까?)도.
새로운 생활도 점차 익숙해졌다. 일몰 10분 전 즈음에 일어난다(금일 20시 15분경 기상). 오늘 읽을 글을 정한다(Ju, Y. (1922). 그건 그녀가 아니야. 2nd ed. 유월당.). 때때로 산책을 한다(금일 생략). 굳이 옷은 갈아입지 않고 있다. 주 1회 사냥을 한다. 그리고 매일 식사를 한다…
그렇다. 식사. 이 식사가 문제이다.
이곳에 살면서 나는 음식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진 적이 없다. 어쨌든 나는 그 영국에 살고 있다. 생선튀김을 대표 요리로 들이대는 곳에 살면서 식사에 대해 기대를 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고 싶다고 원숭이 손한테 빈 것 같은 상황이랄까. 이제 죽을 때까지 그 음식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거다. 그게 좋을 거 같다는 사람이 있다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군. 아직 그런 고문을 겪어본 적이 없을 거일 테니까.
피맛이 거기서 거기라는 이들도 있지만, 내겐 모든 피 맛이 똑같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인간일 적 궁금해했던 생물 개체별 피 맛의 차이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건 흡혈귀가 된 이후 얻은 부수입이다.
그러나 드라마틱한 차이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솔직히 하도 먹었더니 질려서 이제 차이에 더 둔해진 것도 있다. 지금의 나라면 전부인과 딸의 피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기껏해야 알코올 향 차이 정도를 느낄까? 부인은 꽤나 애주가니까 술냄새가 꽤 강하게 날 거 같다. 이렇게 적어보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시도해 볼까. 적당히 수배해 봐야겠다.
-5월 4일-
상대를 너무 적당히 정했다. 입만 버렸다. 입은 헹궜지만 당장 자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 실험 기록 일부와 도중의 감상을 첨부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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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도중의 감상. 공유본 제작 시 이 부분은 옮기지 말 것.
<목적>
음주 전후의 혈액맛 변화
<도구 및 피험자>
도구:
3cc 일회용 주사기, Vampire Cabernet Sauvignon 와인(1988년 산, 13.5%)
*이걸 드디어 열게 되는군.
피험자:
피험자1(인간, 2X세), 피험자2(흡혈귀, XX세), 피험자3(흡혈귀, XX세), 피험자4(흡혈귀, XX세), 피험자5(늑대인간, XX세)
*이번 사냥감에게 인식 조작이 잘 먹혀서 다행이었다.
<실험 과정>
1. 공복 상태(최소 8시간 금식)의 피험자들에게서 혈액 3cc를 채취한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위해, 샘플들의 채취자와 채혈 당시 상태를 기록하고 무작위 번호를 매기는 작업은 조수에게 시킨다. 혈액 샘플은 실온에 보관한다.
2. 와인 150ml를 피험자들에게 마시게 한다.
3. 5분 후 다시 피험자들에게서 채혈한다. 조수가 채취자, 채혈 시 상태를 기록하고 무작위 번호를 매긴다. 위와 마찬가지로 샘플은 실온 보관한다.
4.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 혈액 샘플을 입에 머금고 조금씩 삼키며 맛을 기록한다. 섭취 후 물로 혀를 세척한다. 이를 10회 반복한다.
5. 채취자 및 채혈 상태를 확인한다. 결과를 분석한다.
<실험 결과>
샘플46: 부드럽다. 약간의 짠맛과 강한 피 맛.
*익숙한 걸로 보아 이게 인간 피인 것 같다.
샘플5: 처음에는 약한 쇠맛이 나다가 갈수록 텁텁해짐. 뒷맛이 오랫동안 남음. 불쾌한 맛.
*흡혈귀? 늑대인간?
샘플26: 강한 피 맛. 샘플 46에 약간의 향이 추가된 맛. 과일향과 알코올 향으로 추정.
*음주 후 인간피로 추정. 주종에 따른 맛의 변화도 있을까.
샘플88: 무(無) 맛. 수돗물 냄새라도 느껴지는 물보다도 아무 맛이 안 난다.
샘플12: 약한 쓴 맛이 느껴진 직후 사라짐. 이후 계속 무맛.
샘플22: 무맛.
*무맛 샘플이 많은 걸로 보아 5는 늑대인간이었을 듯. 재실험한다면 피험자 비율도 신경 쓸 것.
샘플97: 무맛.
샘플19: 무맛.
샘플30: 무맛.
*6 연속 아무 맛 없는 샘플이라니 샘플이 잘 섞이지 않은 것 같다.
샘플18: 이딴쓰레기같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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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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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결과 메모. X표 친 항목은 결과 보고서에 옮기지 말 것.
샘플-피험자 번호-채혈 시 상태
46-피험자 1-음주 전 / 5-5-전 / 26-1-후 /88-2-전/12-4-후/22-4-전/97-3-전/19-2-후/30-3-후/ 18-5-후
-인간과 늑대인간은 음주 전후로 혈액 맛이 변화. 특히, 늑대인간 종족에서 극명한 변화가 나타남.
-인간: 새로운 향이 혈액에서 느껴짐. 사람들이 묘사하는 와인 맛의 특징과 유사.
-흡혈귀: 샘플12에서 느껴진 쓴 맛은 알코올 맛? 다른 샘플에서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혀가 둔해져서 그런 걸 수도. 현재로서는 유의미한 결과로 보기 힘듦.
X늑대인간: 음주 전 맛없음. 음주 후 끔찍함.
-늑대인간: 음주 후 형용하기 힘든 불쾌한 맛으로 변화. 맛이 오래 남는다는 특징이 알코올 섭취 후 극대화. 개체의 특성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이하 한계점.
-피험자의 종족이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아, 비슷한 맛이 나는 샘플의 숫자로 채혈자의 종족을 알아채게 됨.
-피험자의 수가 적음.
-시음한 사람이 본인뿐.
-피로도가 올라 갈수록 혀가 둔감해짐
X늑대인간 혈액 섭취 후에는 실험 진행 불가
이하 의문점
X늑대인간 피가 맛없는 이유
-알코올 섭취 후 경과 시간에 따른 변화는?
-채혈 시 혈중 알코올 농도는?
-맛 변화에 주종이 끼치는 영향
X술 마신 늑대인간 피가 맛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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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뜩인 영감의 인도를 따라, 사냥감과 부하들을 이용해 어제 실험을 진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