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0월 3일 4번째 메시지

 번뜩인 영감의 인도를 따라, 사냥감과 부하들을 이용해 어제 실험을 진행했었다. 급한 저녁 초대 메시지를 인간이 받아들여서 다행이다. 주말이라 한가했다고 자기 입으로는 그러던데, 부디 본인이 필요한 중요한 일을 미뤄두고 온 게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부족한 피험자의 수를 늘리려 기상 후 20시 20분경 부하들을 호출했다. 실험의 정확도를 올리려 그런 것이나, 결과적으로 악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명한테는 다른 일을 시켰을 텐데.

 이 실험의 목적이었던 음주에 따른 혈액 맛 변화는 일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원래 궁금했던 것은 장기간 자주 술을 마신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 아닌가. 결국 무의미한 고행이었다.

 솔직히 그건 이제 아무래도 좋다. 5번 샘플도 별로였지만, 18번 샘플이 충격적으로 맛이 없다. 원수한테조차 미안해서 선물하지 못할 것 같은 맛으로, 한여름의 따사로운 햇살 그 자체이다. 이건 음주 후 늑대인간 혈액 샘플로 판명되었다. 찾아보니 개는 알코올을 못 소화시킨다는데,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밑준비도 번거로웠다. 인식을 조작하고 술도 전부 다 마시게 유도해야 했다. 피 좀 뽑자고 하는 일 치고는 지나치게 귀찮다. 게다가 18번 섭취 후 당장 쉬고 싶을 때, 인간은 인간대로 정리해야 했다(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18피를 마신 후 입가심용으로 사용한 후 언제나와 같이 처리했다. 부디 더 손 갈 일이 없기를 바란다.

 준비와 뒷정리로 고생했던 만큼 오늘은 집에서 휴식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1987, 1st ed.)에서 '개' 항목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늑대인간 생태와 연관되는 부분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별개로 실험 결과는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일단 주요 부분은 메모해 두었으니, 내일 실험 기록 합본을 만들어야겠다.

 



-5월 6일-

 저번 실험의 첫 번째 성과는 늑대인간 피에 입도 대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운 것이고(어떻게 이딴 피를 먹게 할 수가 있지?) 두 번째는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강렬한 욕망이 생긴 것이다.

 음식을 좀 제대로 먹고 싶다. 비록 평생 먹어본 그 어떤 영국 음식보다도 피가 맛있긴 하지만, 식사하는 척이 아닌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싶다. 애피타이저로는 샐러드가 좋다. 디저트로는 라이스 푸딩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메인으로는…젠장, 어쨌든 액체류만 아니면 된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다른 걸 먹겠다는 생각만으로 본능이 경종을 울려댄다. 그렇지만 이미 그걸 무시한 적이 있지 않나? 물론 무시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아픈 꼴은 겪지 않았겠지만,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무얼 먹더라도 술 마신 늑대인간 피보다는 맛있을 것 같다.

 중요한 음식 메뉴로는 블랙푸딩을 선정했다. 생전 한 번도 먹은 적 없는 메뉴지만 나름 선택한 이유가 있다. 어제 입가심을 하며 느낀 것인데, 인간 피는 정말 최상의 식재료다. 이를 베이스로 삼은 음식이 다른 음식보다 즐거이 먹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험 기록 합본 정리 후 요리책(Westenra, L. 웨스턴라의 주방. 1st ed. 유월관.)을 읽었다. 표지 사진이 맛있어 보여 구매한 요리책에 마침 블랙푸딩 레시피가 있다. 부하들에게 재료 준비를 지시해 두었다.

 다소 손은 가겠지만, 내일 조리를 시도해 볼 것이다. 





-5월 7일-

 요리했다. 내가 먹기 위해 요리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사용한 레시피 및 메모를 옮겨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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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는 도중에 직접 적은 메모. 본래 요리책에는 없던 부분.



<재료>

약 3파운드 분량 기준.

-신선한 돼지 피 4컵

-소금 2와 1/2 티스푼

-자른귀리 1과 1/2컵

-잘게 다진 비계 2컵

-잘게 다진 큰 노란 양파 1개

-우유 1컵

-간 후추 1과 1/2 티스푼

-간 올스파이스 1 티스푼



<요리법>

-1단계

오븐을 325°F로 예열한 후, 오븐용 유리 용기 2개에 기름을 바릅니다. (유리 용기가 없으면 금속 용기에 종이포일을 깔아 사용합니다. 이는 블랙푸딩이 금속과 반응하여 이취가 나는 것을 방지합니다.)

   *오븐용 용기가 아닌 그릇을 사용해 집에서 그릇을 깨 먹은 적이 있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생각이 안 난다.

   *내 얘기는 아니다.



-2단계

피에 소금 1 티스푼을 섞습니다.

   *그냥 이대로 먹고 싶다.



-3단계

물 2와 1/2컵을 끓이고 귀리를 넣어 저어줍니다. 부드럽지만 흐물거리지는 않을 정도까지, 가끔 저어주며 15분 동안 끓입니다.



-4단계

피을 고운 체에 거른 후 큰 그릇에 부어 덩어리를 제거합니다.

   *지금이라도 먹을까.



-5단계

비계, 양파, 우유, 후추, 올스파이스 및 남은 1과 1/2 티스푼의 소금을 피에 넣고 저어줍니다.

   *생각보다 비계가 많이 들어간다. 전부인은 지방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걸 보면 식겁할 수도 있겠다.



-6단계

오트밀을 넣고 섞어줍니다.

   *딸은 오트밀을 싫어했다. 먹일 때마다 전쟁이었다.

   *나도 오트밀이 싫다.



-7단계

덩어리 팬에 혼합물을 나누고 포일로 덮고 단단해질 때까지 1시간 동안 굽습니다. 완전히 식혀주세요. 장기간 사용하려면 비닐 랩으로 밀봉하고 냉동 보관하거나 최대 일주일 동안 냉장고에 보관하세요.

   *부엌에 서서히 냄새가 가득 찬다. 매일매일 이런 냄새가 집에 가득한 때도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과거의 향을 맡으면서 추억에 잠긴다. 같은 추억을 가진 특별한 누군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이에 기쁨이든 슬픔이든, 하여튼 무엇이든 느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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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망했다. 이유는 터무니없다. 못 먹는 걸로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못 먹을 것 같은 걸 만들어낸 것이다.

 솔직히 요리 중에도 느끼긴 했다. 구체적으로는 1단계 후에 재료를 재확인할 때 느끼기 시작했다. 피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그 외의 재료도 많이 들어갔다. 그렇지만 시작한 게 아까워 도중에 멈출 수 없었다.
2 https://ask.yuwol.pe.kr/posts/ln9qqctb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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