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처럼 의욕을 내서 열심히 만들었는데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 맛을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먹어주면 좋겠다. 그러니까, 부하 말고 다른 사람 말이다. 특히 늑대인간 빼고.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있기는 하다.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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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단계
덩어리에서 약 1/2인치 두께로 조각내어 자릅니다. 가장자리가 약간 바삭하고 갈색이 될 때까지 버터나 기름에 볶은 후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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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40분경, 약속한 시간에 맞춰 웨스턴라 여사가 도착했다. 그렇다. 그 <웨스턴라의 주방> 작가이다. 일주일 안에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여사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부엌으로 안내한 후, 나는 블랙푸딩을 꺼내 볶으며 여사와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음식에 관한 대화들이었다. 주로 무얼 먹는지, 직접 요리하는지, 자주 하는지 등등. 나로서는 다소 곤란한 질문들이었다. 초대한 이유가 이유이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구실을 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요리는 금방 완성되었다. 나는 빠르게 블랙푸딩을 여사 앞으로 옮겼다. 여사는 신중하게 한 점을 집어 들고 천천히 씹었다. 어쩐지 표정이 미묘했다.
결국 참지 못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떠신지요? 입에는 맞으신가요?'
'음-', 여사가 천천히 말했다:-
'나쁘지 않아요. 사실, 좀 짠 것만 빼면 꽤 훌륭한 걸요.'
돼지와 인간에게 맞춰져 있는 레시피를 사용하다 보니 간이 잘 안 맞은 듯하다. 여사가 흡혈귀였다면 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빠르게 솔직한 답을 해준 것은 다행이다. 실망스러운 결과이지만 이번에는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다.
나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레시피가 훌륭한 덕분이지요.'
'무슨, 아부하실 필요 없어요. 진짜로 훌륭했다면 책이 그보다는 더 팔렸겠죠.'
여사는 한숨을 내쉬고는 읊조리듯 말했다.
'나름 최선을 다해 써낸 책이었는데, 재판도 못하다니. 정말 실망스럽다니까요.'
우연히도 여사와 내 기분이 일치했다.
'진가를 다른 사람이 알아봐 주지 못하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지요.'
'그것도 그렇지만요, 사람들이 요리책에 관심이 없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의문을 담아 질문했다.
'생각해 봐요. 사실 사람은 배만 채우면 살아갈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고급 레스토랑은 왜 있는 거고 식당마다 요리는 왜 다른 걸까요? 이건 요리와 맛의 추구는 인간의 최대 특징이자 본성이란 그 자체죠.'
요 근래 들은 것 중에 가장 지당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다른 종과는 구별되죠. 동물이 사료를 먹듯이, 한 가지 음식만 먹으면 인간은 미쳐버리고 말 걸요.'
얼추 맞는 말이지만, 이번에는 정정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미식을 원하는 게 인간만은 아니지요.'
'그런가요?'
'개 키워보신 적 있나요? 가끔 특식을 주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특히 뼈다귀에 붙은 고기라도 주는 날에는, 골수까지 행복한 표정으로 빨아먹던 걸요.'
'잘 아시네요. 키워보신 적 있나 봐요.'
'개는 아니지만, 비슷한 건 데리고 있습니다.'
여사는 즐겁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개랑 다른 점이라면, 인간은 더욱 다양한 요리법으로 맛을 추구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도 그 능력을 포기한 사람도 많고요. 그래서 오늘 초대받아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제가 웨스턴라 여사님의 요리책에 관심을 가져서요?'
'그렇죠! 음식과 만드는 법에, 그것도 제 요리법에 관심을 가져줘서요. 요즘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사람이 정말 많답니다? 요리 연구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양한 사람이 다양한 맛 음식을 추구해 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그러면 엄청 끔찍한 맛의 음식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생기지 않을까요?'
'당연하죠! 어떤 목표든 가진다는 건, 자연스럽고 좋은 일이에요.'
술 마신 늑대인간의 피를 맛보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도 목표가 있어서 이 책을 가지고 있고, 오늘 저한테 직접 요리해서 대접하기까지 한 거잖아요. 어떤 맛을 추구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하하, 그렇지요.'
'어떤 식으로 맛을 내고 싶은 건지 말해보지 않을래요? 그 방향으로 레시피를 개량해 줄 테니까요. 식사의 보답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감사한 말씀이지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명확한 이미지가 없을 수도 있죠. 그럼 다른 음식에 비유해보는 건 어떨까요? 파운드케이크 같은 식감이라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런 거라면 계속 생각하던 게 있다.
'표지 사진 같은 맛이 나면 좋겠습니다.'
'표지 사진이요?'
'네. 그게 제가 <웨스턴라의 주방>을 산 이유거든요. 표지 사진의 음식이 얼마나 맛있어 보이던지.'
'음...뭘 원하는지 알겠다고 말하고 싶지만...표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네요. 어떤 음식을 말하는 건가요?'
'기억나지 않는다니 아쉽네요. 그렇지만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여사가 화제를 바꿨다:-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블랙푸딩 맛이 제가 만들었던 거랑은 좀 다르네요. 특이한 재료나 향신료를 썼나요?'
'그런가요? 제가 자주 쓰는 재료를 썼는데요.'
'어쩌면 비계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무슨 동물의 비계를 썼나요?'
'피랑 똑같은 동물 거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면 돼지 거를 샀겠네요.'
'부끄럽지만 돼지 피는 구매가 힘들었어서요. 다행히 따로 구하는 걸 주변 사람들이 도와줬습니다.'
'하긴, 파는 곳이 요즘은 많지 않지요. 그러면은 어떤 피를...?'
말하던 중 여사가 멈칫했다. 서서히 공포에 질리는 표정을 보니 표지 사진을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나로서는 지금까지 여사가 그걸 잊고 있던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잘 나온 본인 사진이라면 기억할 법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