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지의 시선에서 본다면 3권의 사건들도 꽤 다르게 보이죠.
한번 94년 여름의 퍼지를 상상해보도록 할까요. 붙잡힌 시리우스 블랙이 미스테리하게 탈주하고, 그걸 해명하고 수습하느라 불철주야 뛰어다닌 후 마법부 장관 집무실의 의자에 널브러진 퍼지를요.
사태를 복기하던 퍼지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었을 겁니다.
1. 해리가 있는 이상 향후 몇 년간 죽풍은 덤블도어의 꽃놀이패다.
뭐 원래도 죽먹자들과 싸운 원로니 입지가 크긴 하지만, 살아남은 아이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에 재학중인 이상 덤블도어는 '해리의 보호+해리 주변 학생들의 안전'을 명목으로 상당히 많은 것에 개입할 수 있죠. 가령 디멘터를 호그와트 내부에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거라던가.
2. 시리우스를 잡은 건 덤블도어의 사람이다.
스네이프는 기숙사 학맥 + 제자와의 친분을 통해 덤블도어의 정적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어쨌든 덤블도어의 사람이죠. (덤블도어의 신임이 아니었다면 아즈카반에 갔어야 했기에 목줄이 잡힌 신세입니다.) 물론 글핀이나 불기 출신은 아니니까 덤블도어계 성골은 아닙니다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3. 시리우스는 호그와트에서 신비롭게 탈출했다.
순간이동도 불가능한 밀실에서 3시간 사이 시리우스가 사라졌다. 과연 1차 용의자는 누구일까요? 얼굴도 모르는 죽먹자 잔당? 시리우스의 초인적인 마법? 아니면... 호그와트의 대영주? (그리고 이 추측은 사실이죠)
4. 덤블도어는 이 사태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탈주한 연쇄살인범이 학내에 쳐들어와서 학생을 거의 죽일 뻔한 대형 보안 참사가 일어났고, 그리고 다시 탈주하기까지 했는데도 마법부 장관은 호그와트 교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었습니다. 퍼지는 이 지점에서 덤블도어가 가진 힘을 뼈저리게 느꼈을 겁니다.
이렇게 보면 스네이프의 훈장 취소가 조금 다르게 보이죠. 시리우스를 잡지는 못했지만 해리를 구한 것은 여전한 만큼 하급 훈장이라도 줄 만 한데, 그것조차 거부되었다는 건 탈주 사태의 진실에 대해 의문을 가진 퍼지+탈주 사태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던 덤블도어 양자의 이해가 일치했다는 뜻일 겁니다.
덤블도어가 5권 초중반에 시리우스의 무죄를 주장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뭐... 그랬다면 퍼지가 무슨 생각이었을지는...
(P.S. 저는 퍼지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법사 세계의 정치적 전통에 따라 착실히 행동한 모범적인 관료이자 합리적인 마법사 평균인에 가까워요. 다만 작가에게 억까를 당했을 뿐...)
답글
이야 이분 음모론 맛집이시네
다만 퍼지가 "모범적인 관료이자 합리적인 마법사 평균인"이란 것에는 동의해도 바보가 아니란 말엔 동의할 수 없군요
퍼지는 바티 크라우치를 즉결처형하는 등 명백한 바보짓을 저질렀죠
단지 평균 마법사 수준이 바보일 뿐